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.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.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. [리포트]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.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,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,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.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. [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/일기 낭독 : "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.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."]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, ["광주시의 반대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.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. 양조장인듯하다."] 함께 날아 온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. ["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."]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보했습니다. ["여수항으로 가서, 거기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."]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,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. ["(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?)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. (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?) 절반 정도는 됐어요.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."]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. ["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,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싶은 대원,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."] 일본 패전 직전,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.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. ["(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'위안부'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?)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. (일본의 우익?) 일본의 우익."] 인터뷰 당시의 나이는 92살. 취재진은 광주항공대에 배치됐던 일본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생존자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.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.
▣ KBS 기사 원문보기 : http://news.kbs.co.kr/news/view.do?ncd=8331072
▣ 제보 하기
◇ 카카오톡 : 'KBS제보' 검색
◇ 전화 : 02-781-1234
◇ 홈페이지 : https://goo.gl/4bWbkG
◇ 이메일 :
[email protected]
Copyright ⓒ KBS. All rights reserved. 무단 전재, 재배포 및 이용(AI 학습 포함) 금지#지역뉴스 #광주 #광주항공기지 #해군항공대의 #고바야지